매거진

매거진갈등의 시작은
후추였다
APRIL 2020 -ISSUE .19HIT : 1724
매거진갈등의 시작은후추였다  

오늘날 식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후추는 과거 ‘검은 황금’이라고 불릴 만큼 귀한 향신료였다.
후추는 십자군 전쟁의 중심에도 있었고, 대항해 시대의 노예무역과 식민지배의 역사에도 등장한다. 음식의 맛을 한결 낫게 만드는 양념으로 시작된 일이라기엔 믿기 어렵다. 후추를 둘러싼 갈등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검은 황금이라고 불리던 후추

약으로, 맛으로, 돈으로 변신하는 ‘만능 양념’

후추가 서구에 전해진 건 서기 400년경 아라비아 상인을 통해서였다. 후추는 단일 품종으로 인도 남부해안이 원산지인데, 유럽과 인도 사이엔 아라비아가 가로막고 있어서 유럽인들은 아라비아 상인으로부터 후추를 금이나 은보다 비싼 값에 사야 했다. 후추가 그리스로 처음 유입되었을 때 그 용도는 사실 요리용이 아니고 의료용이었다. 사람들은 악취가 모든 병의 근원이라고 생각했고,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 환자의 집을 후추로 소독하기도 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과 달리 후추를 양념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고기 등의 식재료를 신선하게 보관할 수 없었던 이들은 후추와 기타 향신료의 향기로 고기의 누린내 등을 감췄고, 맛도 더 좋게 했다. 이후 유럽 귀족들은 채소, 생선, 고기 등 모든 요리에 후추를 뿌려 먹기 시작했다.
유럽의 귀족들은 비잔틴 제국에서 후추를 수입해 왔는데 제국이 무너지자 후추 값이 폭등했다. 이때 귀금속, 세금, 집세 등을 후추로 계산했고, 지주들은 화폐가 아닌 후추로 지대를 받기도 했다. 후추의 가격을 따져 보면, 후추 한 주먹은 노예 열 명의 가격과 동일했고, 동양에서는 후추 알갱이 한 알이 진주 한 알의 가치와 같았다고 한다.

역사상 가장 많은 인간을 죽인 식재료?

기독교 국가와 이슬람 국가의 전쟁이 치열했던 시대. 그 갈등과 분쟁의 중심에도 후추가 있었다. 기독교 국가는 이슬람 국가로부터 성지를 탈환하고자 전쟁을 지속했지만, 한편엔 이슬람 국가를 거치지 않고 인도에서 후추를 사 오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고 한다. 원거리 항해가 어렵던 시기, 항해사 ‘바스쿠 다 가마’는 포르투갈 선단을 이끌고 1498년 인도에 입항했고, 그는 향신료를 가지고 리스본으로 돌아왔다. 그 후 유럽인들은 정상 가격으로 후추를 살 수 있다고 믿었지만, 향신료 무역은 포르투갈이 독점했다. 이에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독자적 항로를 개척하게 되면서 대항해시대가 열렸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역시 후추를 찾아 인도로 떠났는데, 그는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로 오인했다. 그는 후추 대신 원주민들이 가지고 있던 금을 보았고, 에스파냐 본국에 이를 알렸다. 에스파냐인들은 ‘신대륙’을 본격적으로 탐험, 정복했다. 이 사건은 세상을 바꾼 엄청난 ‘발견’임과 동시에 대량학살과 강제노역 등 ‘갈등의 역사’가 시작된 지점이다. 만약 그의 계획대로 그가 인도에 닿아 후추를 발견했다면, 세계의 역사는 달리 쓰이지 않았을까?

by 글. 추현경 hyeong119@donga.co.kr

next

WORLD SHIPPING

PLEASE SELECT THE DESTINATION COUNTRY AND LANGUAGE :

GO
close